푸트볼 클루브 바르셀로나는 흔히 바르셀로나 혹은 줄여서 바르사로 알려진 프로 축구단으로, 스페인 카탈루냐 주 바르셀로나를 연고로 하며, 스페인 축구 1부 리그인 라 리가에 소속되어 있다.
1899년, 요한 감퍼를 주축으로 다수의 스위스, 스페인, 독일, 그리고 잉글랜드의 축구인이 창단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문화와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이는 구단 좌우명인 "구단 그 이상"으로 나타난다. 다른 대부분 축구단들과 대조적으로, 지지자들이 구단주로서 구단을 운영한다. 이 구단은 $4.76B의 가치를 지니어 세계에서 4번째로 가치가 높은 구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출 면에서 €582.1M의 소득을 내는 연간 4번째로 부유한 구단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의 공식곡은 "바르사 찬가"로 자우메 피카스와 주제프 마리아 에스피나스가 작사했다. 전통적으로 바르셀로나는 짙은 청색과 적색 줄무늬 유니폼을 착용해 파랑-클라르 군단으로 수식된다.
바르셀로나는 국내 무대에서 최다인 75번의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라 리가를 26번, 코파 델 레이를 31번,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13번, 코파 에바 두아르테를 3번, 그리고 코파 데 라 리가를 2번 우승했고, 이 중 후자의 4개 대회는 최다 우승 구단이기도 하다. 국제 무대에서, 구단은 20번의 유럽 및 국제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챔피언스리그를 5번, 컵위너스컵을 최다인 4번, UEFA 슈퍼컵을 공동 최다인 5번, 인터시티스 페어스컵을 최다인 3번, 그리고 클럽 월드컵을 3번 우승했다.[5] 바르셀로나는 1997년, 2009년, 2011년, 2012년, 그리고 2015년에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 랭킹 선두를 달렸고, 2022년 5월 기준으로 UEFA 클럽 랭킹 6위에 올라 있다. 구단은 오랜 기간 레알 마드리드와 경쟁 관계였으며, 두 구단 간의 경기는 고전 더비로 수식된다.
바르셀로나는 세계에서 지지자들이 손꼽히게 많은 구단으로, 사회 매체 추종자 규모도 세계의 스포츠 구단들 중 손에 꼽히게 크다. 바르셀로나는 요한 크라위프를 필두로 발롱도르 수상자를 역대 최다인 12번 배출했으며,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그리고 호나우지뉴를 비롯해 FIFA 올해의 선수 수상자도 역대 최다인 7번 배출했다. 2010년에는 구단 유소년부 출신인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그리고 차비가 2010년 FIFA 발롱도르의 최종 후보 3인으로 올랐는데, 같은 유소년부 출신으로 최종 후보 3명이 선정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또한 유러피언 골든 슈 수상자도 바르셀로나가 역대 최다인 8회를 배출했다.
바르셀로나는 1929년에 1부 리그인 라 리가로 출범한 이래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3개 구단 중 하나로, 나머지 두 구단은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마드리드이다. 2009년,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 코파 델 레이, 그리고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해 스페인 구단 사상 처음으로 대륙 3관왕을 달성한 구단이 되었으며,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UEFA 슈퍼컵, 그리고 클럽 월드컵 우승도 추가하여 한 해에 치른 6대회를 모두 석권한 첫 스페인 구단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2011년, 바르셀로나는 다시 유럽 정상에 올랐으며, 5개 대회를 석권했다. 이 바르셀로나 선수단은 4년 동안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 하에 14개의 대회 정상에 올랐고, 축구 역사상 역대 최강의 선수단 중 하나로 거론된다. 2015년에 5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바르셀로나는 유럽 축구 역사상 대륙 3관왕을 2번 달성한 최초의 구단으로도 기록에 남았다.
창단 모토는 클럽 그 이상. 이 클럽의 또 다른 특이사항으로는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축구 클럽이라는 것. 일종의 시민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박물관 2층 입구에도 '바르사의 주인은 조합원'이라고 새겨 놓았을 정도다.
그래서, FC 바르셀로나는 구단주가 구단을 창설하면 그에 맞춰서 팬들이 생겨나는 방식이 아니라, 축구팬들이 자발적으로 자본을 출자하여 구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구단의 회장까지도 6년마다 한 번씩 팬들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한다. 투표권이 주어지는 자격은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6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클럽 회장 선거에서 투표를 행사하면서 회장을 선출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단, 회장 출마는 카탈루냐인만 가능하다.
바르셀로나 현지에선 그 위상이 거의 종교 수준이다. 괜히 모토가 '클럽 그 이상'이 아닌 셈. 스페인 내전 시기부터 이어진 역사적 풍파와 혼돈을 바르셀로나 시민과 함께 거쳐온 클럽이기 때문에 지역 열성팬들의 팀 충성도가 굉장히 높다. 물론 2000년대 후반부터 보여준 끝판왕 포스를 보고 급유입된 각국의 철새팬들도 매우 많은 편. 챔피언스 리그 첫 우승은 1992년으로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지만 2006년 두 번째 우승 이후 빅 이어만 3차례나 들어올렸다.
리누스 미헬스가 창시하고 요한 크루이프가 구현한 토탈 풋볼을 바탕으로 좁은 공수간격을 통해 짧은 패스를 이용한 '티키타카' 전술을 사용하여, 2008~2012년까지 축구 역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라는 데에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었다. 특히나 2010-11 시즌 강팀, 약팀 가리지않고 만나는 팀들마다 반코트 경기를 시전하고는 했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엘 클라시코 5:0 대승.
아리고 사키의 '밀란 왕조'가 끝난 뒤, 곧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10여년 간 이어진 춘추전국시대를 깨고 유럽 축구의 헤게모니를 구축한 클럽 중 하나로서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바르셀로나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유럽 축구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조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2005-06~2014-15 시즌까지 10년간 챔스 4회 우승, 리그 6회 우승(평균 승점 85),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두 번의 트레블과 2009년 6관왕 등, 전 유럽 축구사를 통틀어 이만한 업적을 이룩한 왕조를 뽑아보자면, 1950-60년대 유럽을 주름잡았던 <저승사자 군단> 레알 왕조, 1970년대 초반의 <토탈 풋볼> 아약스 왕조, 1970년대 중반의 <카이저의 팀> 바이에른 왕조,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순까지의 <붉은 제국> 리버풀 왕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키 혁명> 밀란 왕조 만이 이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를 "내 생애 최고의 팀"이라고 꼽았으며, 아르센 벵거 전 아스날 감독도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를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팀"이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가 타팀 감독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까닭은 단순히 강하다거나, 우아한 축구를 구사한다거나, 우승컵을 왕창 쓸어담아서가 아니다. 팀의 주요 선수들을 여기저기서 사모으는 것이 아닌, 유스 때부터 스스로 착착 키워 올려 엄청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게이머부터 실제 축구계 관계자들마저 한 번쯤은 꿈꿔보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 만한 축구 기반이나 철학, 시간 투자는 하지도 않은 채 저 엄청난 이상에 혹해서 어중이떠중이로 대충 점유율 축구 흉내만 내다가 폭망한 팀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바르셀로나 자신도 이 꿈의 세대 이후 대체자들을 찾지 못해 전성기에서 내려왔다. 사실, 라 마시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영원히 자체조달 할 순 없다. 바르셀로나의 하락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빛이 워낙 강렬했던 만큼, 꿈의 세대 노화 후 그 그림자도 짙어져버린 셈.
팀의 유니폼 색깔은 클럽의 창시자 조안 감페르가 스위스인이라서 스위스의 명문 클럽 FC 바젤을 참고한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르사의 지위가 높아지자 FC 바젤 팬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클럽이 바르사를 따라했다며 클럽을 욕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사용한 유니폼에서 유래한 별명이 블라우그라나인데, 카탈루냐어로 블라우가 파란색이고 그라나가 선홍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