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런던 해머스미스 앤 풀럼. 홈 구장은 스탬퍼드 브리지다.
영국 클럽 최초로 UEFA 3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한 기록을 갖고 있는 런던 최고의 빅클럽이자,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강팀이다. 또한 프리미어 리그 6회 우승, FA컵 8회 우승, EFL컵 5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구장이 먼저 지어지고 소유권을 구단이 산 케이스다. 창립주 거스 미어스는 영국의 축구 열풍을 노리고 자신의 구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1904년, 지금의 스탬퍼드 브리지를 매입한다. 풀럼에 위치한 스탬퍼드 브리지는 원래 풀럼 FC에게 제공될 예정이었으나, 구장 임대비가 비싸 거절당했다. 이때 마침 런던의 철도 회사 '그레이트웨스턴레일웨이'가 이 구장을 석탄 저장고로 매입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와 첼시 FC 창업주 거스 미어스는 갈등했지만 친구 프레드 파커의 설득으로 1905년 자신의 구단을 새로이 창립한다. 이것이 첼시 FC의 시작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과거에 삼성이 스폰했던 팀으로도 유명하다. 삼성은 첼시의 팀 컬러인 파란색을 생각해 2005년부터 첼시를 스폰했는데, 첼시 팬인 여러 대기업 오너들과의 인맥 등을 고려한 결과 첼시가 3시즌(2006-07~2008-09) 리그나 챔스를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스폰 계약 연장을 했다. 그리고 2009-10 시즌 첼시가 더블을 달성하면서 삼성도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많은 이익을 보았고 2011-12 시즌 첼시의 챔스 우승 이후 스폰서 계약 연장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에서 더 이상 마케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2014-15 시즌을 끝으로 첼시 유니폼에서 삼성 로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스폰해온 10년 동안 첼시와 삼성은 서로 세계구급의 빅클럽과 대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아쉬웠는지, 스폰이 끝나기 전 서로에게 10년 스폰 기념 영상을 헌정했다.
첼시는 북런던의 두 클럽인 아스널 및 토트넘과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항상 열기와 논쟁이 많았는데, 특히 1970년 FA컵 결승이 그러했다. 최근에는 리버풀과의 경쟁의식이 성장하였는데, 이는 컵 경기에서 첼시와 리버풀이 자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서런던 더비라 불리는 첼시의 지역 더비는 머지사이드 더비나 북런던 더비와 같이 큰 규모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첼시와 풀럼,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첼시와 오랫동안 다른 디비전에 속해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4년, Planetfootball.com의 조사에 따르면 첼시 팬들이 자신들의 주된 라이벌로 생각하는 팀은 아스널과 토트넘 홋스퍼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순서대로) 같은 조사에 따르면, 아스널 · 풀럼 · 리즈 · QPR · 토트넘 · 웨스트 햄의 팬들은 첼시를 그들의 주요 라이벌 중 하나로 꼽았다.
첼시 FC와 토트넘 홋스퍼 FC 간의 더비 매치.
두 팀은 런던을 연고지로 하여, 런던 팀들이 으레 그렇듯 사이가 매우 나쁘며 종종 충돌도 발생하였다.
2012년 한 설문에 따르면 첼시 팬들은 아스날이나 맨유보다 토트넘을 더 주요 라이벌로 여긴다는 결과가 있다. 이 설문에서 토트넘 팬들은 아스날을 첫번째 라이벌로, 첼시를 두번째 라이벌로 여긴다고 하였다.
2020년, 언론사 디 애슬레틱 설문조사에서는, 첼시팬들이 라이벌 구단으로 1위를 토트넘 (58.6%) 2위로 아스날 (26.7%)을 지목했다고 한다.
이들 사이의 악연은 첼시의 훌리건과 관계된 점도 있다. 첼시의 훌리건은 신나치 보수파, 극우주의와 관련이 많았다. 이들 중 극성인 사람들은 히틀러를 찬양하며 인종청소를 선동하고 런던 내 유대인들에게 악감정을 가졌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유럽 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영국 금융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이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첼시의 훌리건은 유대인이 밀집한 지역을 연고로 하는 토트넘 역시 곱게 볼 리 없었으며, 이는 경기장 내까지 이어져 유대인을 비방하는 노래를 부르는 등 여러 악연을 쌓아갔다.
뿐만 아니라, 첼시는 지역라이벌의 부재를 느끼고있는 상황이었는데. 토트넘은 아스날(북런던 더비), 리버풀은 에버튼(머지사이드 더비)과 맨유(노스웨스트 더비)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첼시는 인근 서런던 지역에 풀럼 FC와 QPR가 있었지만, 이들과 경쟁 다운 경쟁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 이에 첼시팬들이 같은 서런던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 구단이 북런던팀 토트넘이 되게되었다.
아스날 FC와 첼시 FC 간의 더비 매치.
아스날 FC과 첼시 FC 사이의 첫 경기는 1907년도에 이루어졌다. 북런던 아스날 FC와 서런던 첼시 FC는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라이벌 관계로, 1990년대 후반 첼시가 부상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두팀 모두 아르센 벵거와 주제 무리뉴라는 명장을 앞세워 00년대 EPL의 부흥기를 이끌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00년대 전반기/후반기를 나눠 EPL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다만 첼시가 로만 체제에서 우승권 팀으로 거듭나던 시기와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이후 긴축재정에 들어가 팀 전력이 하락하던 시기가 겹쳐 직접적인 우승경쟁을 한 경험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경찰이 대거 출동하고, 선수단 버스 테러, 경기장 파손 등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북런던 더비 관계의 아스날과 토트넘. 2003년 이후 서로 간에 선수이적 거래를 하고 있지 않은 첼시와 토트넘 등, 다른 런던더비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아스날과 첼시는 서로 간에 선수이적 거래도 서로 일어나고있으며, 큰 사건사고도 없는 분위기이다.
사건사고가 없는 것을 너머 서로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딜도 자주 하는 편인데, 예를들어 주급문제로 팀을 떠나려는 애쉴리 콜을 아스날에서 첼시로 보내면서 대체자원으로 첼시에서 풀백 뛰기 싫어하던 윌리엄 갈라스가 아스날로 왔고, 콜은 첼시의 레전드가 되었고 갈라스는 팀내 불화를 일으키는 등 문제는 있었지만 활약 자체는 준수했다. 또 티보 쿠르트와가 첼시에 입단해 갈 곳을 잃은 페트르 체흐를 골키퍼 문제가 있던 아스날이 영입해 잘 써먹기도 했다. 아스날은 오바메양영입 과정에서도 당시 백업 원톱 자원이 필요하던 첼시에게 올리비에 지루를 넘기는 삼각딜을 하고 부족한 센터백 자원을 영입하기 위해 다비드 루이스를 데려오기도 하는 등 양 팀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딜에서는 대부분 첼시가 이긴 느낌이 드는 것은 지울 수 없다.
즉, 아스날 - 토트넘 > 첼시 - 토트넘 > 아스날 - 첼시 순서로 사이가 안좋다고 볼 수있다.